2021.06.02

행복

210602_column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
행복추구는 삶의 원동력이 되고 삶을 향상시킨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당신은 아는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행복이라는 단어를 쉽게 올리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행복감이다.
행복과 행복감이 어떻게 다르냐고?
행복감은 실제적인 행복이 아니거나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은 아니지만 순간 행복하다고 느끼게 되는 감정을 말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말하는 “행복하다.”는 말은 거의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뒤 “아, 행복해.” 이 감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다른 부담되는 일이나 불쾌한 일이 벌어지면 자취를 감추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이라고 하는 것이다.

행복을 논하려면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한데, 그렇게까지 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간단히 정리하면, 행복은 무언가를 얻은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얻고자 하는 것을 성취해 가는 데 있다는 것을 먼저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돈을 모아 가는데, 돈을 요긴하게 쓴 것에 행복해지는 것이 바로 일례이다.
따라서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았을 때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자기가 행복하다 해도 자기보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과 비교에서 오는 우월감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지, 실제 그것으로 행복하다고 하지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잠을 잔다.
잠을 잔다고 다 행복한 것이 아니다.
하루를 잘 보냈을 때 행복한 잠을 이룬다.
인생도 그러하다.
그러니 순간적인 행복감이나 가짜 행복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부럽다면 말릴 수는 없지만, 그런 것들은 진정한 행복에 방해를 주었으면 주었지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놀고 즐겁게 지내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생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면 고치는 것이 좋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은 놀고 즐거우면 그 어떤 것이든지 행복하게 된다는 망상에 빠지기 때문에 이들의 삶에는 도덕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도덕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옛날 교훈을 들먹이려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삶을 말하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도둑질해서 가진 돈으로 즐거움을 누린다면 그것은 행복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남을 괴롭히면서 낄낄대며 웃는 웃음도 행복한 웃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경쟁사회에 살고, 상대를 이겨야 잘 되는 것이라는 아름답지 못한 현실 속에 발을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이런 착각에 빠진다.
행복하려면 남을 이겨야 한다는…
그래서 오늘 내가 가진 집을 놓고 행복하지 못한 것은 다른 사람들은 더 큰 집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함으로 얻고자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 애태우는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행복을 느껴보고 싶어 한다.
게다가 약은 수나 반칙마저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약물에 의존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성취에 붙어서 행복감을 느끼고자 한다.
문제는 이런 가짜 행복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과 자신이 의존했던 대상이 몰락하면 자신도, 자신의 행복도 몰락해 버린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그러면 어떻게 하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우선, 진정하고 참되며 가치 있고 지속되는 행복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고 그것을 추구하라고 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겠다.
곰곰이 생각해 보라.
그리고 이 행복을 이루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라.
조금 전에 말한 대로, 얻은 그것으로 행복해진다기보다 그것을 이루어가면서 행복해진다.
이루어진 것은 노력의 결과이다.
이 점을 명심하라.
당신이 무엇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이루어가고 있다는 희망과 확신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든다.
또 한 가지 말한다면 이기적인 것보다 이타적인 것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이전에 어느 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다.
한국 최고의 재벌을 만나고 왔다고 한다.
아침에 만나 이렇게 인사를 했다.
“아침식사를 하셨습니까?”(이것은 관습적인 인사이다. 재벌이 굶었을 리가 있겠는가?)
그랬더니 뜻밖의 대답을 하더라는 것이다.
“하기야 했지.”
“…..?”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 그러더라는 것이다.
같이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마음 놓고 마음을 맞대고 먹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돈 많음이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가르쳐주는 것 같다.
행복은 높은 데에만 있지 않다.
지금 자기 옆에 있기도 하다.
파랑새를 찾아가듯 나가 보라.
헤매다 결국 찾지 못하고 실망가득 한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파랑새를 발견할 수도 있다.
결정적인 것 하나, 자신이 느끼지 못하면 아무리 행복의 요건이 구비되어도 자신은 불행하게 여긴다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다.
글이 이 정도 되면 행복에 군침을 돌게 해놓고 제자리에 온 것이잖아요! 하고 말할지 모른다.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만 보지 말라.
행복을 이루기 위해 항해하는 것도 얼마나 좋은 것인가!
우리가 행복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때 사실 우리는 불행 속에 있거나 주변에 불행이 널려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행복을 논한다는 것은 그것을 향해 가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내 옆에 있는 행복도 놓치지 말라고 덧붙이고 싶다.
행복은 한 가지가 아니다.
가장 큰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평생을 교회에 다닌다고 해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불행 가운데 살게 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어떻게 행복한 거냐고?
그것을 모르면 바른 신앙의 자리에 다다르지 못한다.
무엇보다 이것이 가장 크고, 근본적이며, 궁극적인 것이다.
당신은 이 답을 찾아야 한다.
지금 까지 논한 모든 것을 훨씬 뛰어 넘는 것이다.
하나님을 생각할 때, 주고받는 거래의 상대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의 신앙행위는 마치 하나님께 항상 받고자 하는 것 자체이고, 그것을 받으므로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면 받지 않았을 때는 불행하다는 것을 단정하는 꼴이 된다.
하나님은 이루어 가게도 하시고, 주시기도 하시고, 함께하기도 하신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모시는 것이 행복의 시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