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1

코로나(2) – 지금을 극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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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길거리를 나가보면 내 눈에 띄는 확실한 것이 있다.
목사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교회 차들이 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전에는 교회 승합차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근래에는 거의 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코로나로 인해 심방이나 작은 교회 목회자들의 움직임이 둔화되었거나 더 이상 승합차를 운영하기 어려운 실정에 놓이게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우려되는 부분이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곳이 많겠지만 작은 교회들이 맞은 것이 아닐까?
복음이란 모두가 들어야 하듯, 어느 교회든 바르게 서 있는 교회라면 그 교회를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
‘될 만한 교회는 된다.’는 말은 시대적 시각에서 하는 말이겠지만 나는 모두가 잘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가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되는데, 나는 그것을 유쾌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큰 교회가 작은 교회의 성도들을 다 끌어간다는 말이 그것이다.
왜 끌어오는가? 사람들은 빼앗아 올 수도 없고, 자아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자기 발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자기 발로 오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큰 교회의 목회자는 대단한 자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는 세상의 성취라는 개념의 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무게감이 더 느껴진다.
더 부담을 갖는다는 말이다.
만약 목사가 그 부담감을 갖지 않는다면 목사로서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작은 교회 목사는 중압감이 덜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한 영혼, 한 영혼이 귀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 어떤 말로도 이것저것을 간단히 설명하지 못한다.
모두가 세상적인 성공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보니까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데, 이참에 그런 생각들을 고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모든 교회는 다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는 그의 제자들이다.
그렇다면 은혜로, 많이 모이면 많이 감당하고, 적게 모이면 적은 대로 감당해서 또 하나님이 이끄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쪽으로 각각 나아가야 한다.
하나의 신앙이지만 각각 주어진 달란트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또 이 말을 곡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작은 교회는 작은 대로 가면 된다고?
그런 말이 아니다.
주어진 오늘 충성하면 주님이 뜻하신 바대로 인도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이 말을 끄집어 낸 것은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현실에 질식당하지 말고 이겨내야 한다고 격려하고 싶어서이다.
각자의 사명을 확인하고 주님을 굳게 붙들고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열어가야 한다.
언제 기독교가 어렵지 않은 때가 있었는가?
형통할 때 기독교는 병들었었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교회사가 보여주는 것이다.
서로 돕고, 서로 격려하자고만 외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우리는 영적인 전쟁을 하는 것인데, 주님을 붙들고 현실을 이겨야 한다.
당신이 외쳤던 기도,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기도할 마음이 사라졌다면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믿음이 문제인 것이다.
세상이 점점 세속화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면 우리는 세속화 앞에 무릎을 꿇을 일이 아니라 세속화를 이길 능력을 쌓아야 하고, 이기는 전투에 진력을 기울여야한다.
시련은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고, 성숙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시련은 우리 자신을 정화시키고,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코로나를 당해 어려운 사람들이 많고, 교회들 또한 그러하다.
혼란과 현란을 거듭하는 세상에서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 그럴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불태우고 분투 후 하나님 앞에 설 때 칭찬과 영광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할 세상 앞에 굴복하면 안 된다.
어둡고 시끄러운 혼돈의 시대에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우리는 더욱 빛나야 한다.
주님께서 함께하시기를!
당신에게 힘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