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9

코로나 때 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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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 뭐했어?”
난 이 질문이 가장 겁난다.
봉쇄, 거리두기, 마스크라는 단어들이 워낙 많이 주입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들은 얼핏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못하는 것은 내 탓이 아니라 환경 탓으로 돌리게 된다.
모임도 가질 수 없고, 마음대로 대화도 할 수 없다.
마스크를 끼고 말할 때는 더 큰 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은 답답하게 여기고, 어느 보도에 따르면 적잖은 사람들이 코로나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모두가 실제 공감하기 때문에 이런 표현들이 낯설지 않다.
그런데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경제도 성장했다는 보도들을 보면 “어? 다들 뭔가 하네?” 하는 충격에 빠진다.
이상하게 인간은 하는 것에 습관이 잘 드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에 습관이 잘 들기 때문에 어떤 불편한 조건만 생기면 안 하는 쪽을 받아들이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안 되는 것은 내 탓이 아니라 환경 탓으로 돌린다.
환경과 상황, 사건이 자신의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은 것이다.
그런데 어려운 상황에서도 세상은 돌아가는 것을 보니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가동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말이 쉽지, 실제 그렇게 되나?” 이 글을 쓰는 내 마음의 소리이다.

어린 시절 농촌에서 몇 년을 살았다.
어느 날 보니 당연히 물을 채워야 할 논에 농부가 물을 빼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언제는 비가 오면 논으로 달려가 물이 자기 논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가두는 작업을 하더니만 이제는 물을 뺀다? 이상하게 여겨져 물었다.
그 농부가 한 말, “물이 계속 고여 있으면 썩어!” 그 말이 훨씬 나중에서야 이해가 되었다.
이 말을 바꾸면 좋은 환경에 인간을 그대로 방치하면 썩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적절한, 때로는 혹독한 고난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것을 통해 인간은 고난에 대비하고, 대책을 만들려고 머리를 짜내 그것을 이겨나가기 위해 노력함으로 성장을 이룬다.
왜 많은 작가들이 인간의 고난을 다루는지,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가 이해될 것 같지 않은가?
평안은 어려움을 피함으로 오는 것이라기보다 극복함으로 오는 것이다.

하찮은 보물은 “나 여기 있어.”라고 말한다.
그보다 더 큰 보물은 “나 기억 나?”라고 말하고, 무엇보다 정말 큰 보물은 “거기 있었지.”라고 말한다.
이 말을 풀면, 현재 우리 눈에는 보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 눈에 보이는 보물은 조그만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놓쳐버린다. 하찮아 보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이 보물이었다는 것을 느낄 때는 지나가고 난 뒤이다.
그 보물의 가치를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을 때는 너무 멀리 지나가버려서 돌이킬 수도, 잡을 수도 없게 돼 버린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본다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볼 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웬 엉뚱한 소리냐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하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을 언제 만나는가?
만나본 적이 있는가?
예수를 믿는다면서 하나님과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리 설명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어떤 사람은 가끔 가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난다고 말한다.
이것을 아는가? 사실 하나님은 늘 계시므로 매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산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내가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다가가거나, 특별한 체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매순간 우리와 함께하신다.
단지 내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닫고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과 만나지 않는다고 여길 뿐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사람들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이라 보지도 않았고, 그를 눈여겨보지도 않았다.
단지 그가 대단한 기적을 행할 때 특별한 눈으로 보기도 하고, 그런 역사가 자신에게도 일어나기를 바라거나 그런 일을 계속 행해서 뭔가를 얻고자 했을 뿐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예수님은 분명히 눈앞에 있으나 예수님을 보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남루한 옷을 입고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봐 넘겼을 수 있다.

우리가 당한 기나긴 어려운 상황에서도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존재하고 역사하신다.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시각으로 하나님의 손길을 너무 쉽게 간과하거나 보지 못한다.
어려운 상황을 탓할 것이 아니라 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알아야 하고, 우리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살펴 행해야 한다.
고난은 우리에게 성장을 촉진시키는 작용이 되게 해야 한다.
놓쳐서 멀리 보내고 그 가치를 아쉬워 할 것이 아니라 오늘 조그만 것에 가치를 알고 진정한 보물로 키우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은혜는 공짜이다.
그러나 그 공짜는 가만히 있어 아무 것도 안 하는 공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해도 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니 공짜로 주시는 것이다.
반면에 내 잘났음을 통해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내가 겸손하게 받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은혜이기도 하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오늘 환경을 허락하신 것을 수용하고, 주어진 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고난을 탓하다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말고 오늘 내 앞에 계신 주님을 붙잡으라.
코로나 때 뭐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