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9

코로나 끝내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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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받았던 충격 중 하나를 말하자면 콜레라에 대한 것이다.
초등 3,4학년 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휴교령이 내려졌다.
매일 아침 등교를 전쟁처럼 하다가 학교에 나오지 말라는 정부의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놀랐지만 신기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콜레라가 그렇게 무서운 질병인가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점심을 먹고 학교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가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정말 학교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학교 안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텅 빈 상태로 적막감이 흘렀다.
잘 사는 동네는 어떨까?
그 동네로 가 보니 길거리에 사람들이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신기하기도 무섭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집 대문 앞에 새끼줄이 쳐져 있었다.
그 집 사람이 콜레라에 걸렸다는 뜻이었다.
부자들도 이런 전염병에 걸리는가?
의문이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두려움이 점점 엄습하여 집으로 돌아와 버렸지만, 나중에 안 사실은 그 집 사람들이 자기 집 우물물을 먹고 감염이 된 것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자기 집 우물이 있는 것은 부유함의 상징이고, 깨끗함을 말하는데??
눈으로 보기는, 수도가 없는 시대라 개인집에 우물이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부유하고 깨끗하게 산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그 우물을 깊이 판다 해도 옆에서 지하로 새어 들어오는 오물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후 부잣집마다 있던 부의 상징인 우물이 싹 없어졌다.
이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으로 치명상을 입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기억난다.

2년 전 코로나 바이러스 발생확인으로부터 시작하여 돌이켜보기 싫은 봉쇄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감염된 사람이나 그로 인해 생명을 잃은 사람들이 많이 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금 약화, 감소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에 곧 마무리되고 일상복귀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자리까지 오기는 했다.
자꾸 변이종이 발견되기 때문에 속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속히 극복하기 기도한다.

나의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보면 인간은 전염병으로 인해 세상이 완전히 바뀌는 일들을 겪어왔다.
획기적인 과학의 발견이나 세속적인 어떤 세력에 의해 세상이 바뀌었다기보다 고통과 질병으로 인해 세상이 바뀌는 일이 더 많았다는 말이다.
안토니 병으로 로마제국은 동쪽으로 진군을 포기해야 했고, 페스트로 유럽은 초토화되었으며(그 이후 다른 곳으로 이주해가서 사는 열풍이 불었다.), 스페인 독감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후 세상은 위생적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수많은 의술이 발전하기도 하고, 위생적인 조치가 강조되기도 했다.
제너에 의해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었고, 말라리아, 앞서 말한 콜레라 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그 균들을 박멸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청결이었고, 자기 건강관리였다.
이것은 타국이나 유럽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것이 역사 기록물에서 발견된다.
전염병이 돌면 그것을 막기 위한 온갖 방법이 다 동원된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고, 집을 불태우거나 그 집을 버려두고 타지로 떠나는 것, 걸린 사람들과 격리되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 외에는 달리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지금도 사실 2년이 넘게 세계가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연구하여 코로나바이러스를 퇴치하고자 하지만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감염되지 않도록 타인과의 접촉을 삼가고, 감염될 수 있는 행위를 피하며, 자주 손을 씻는 것, 이것 외에는 특별한 처방이 없다.
물론 개발된 백신도 치료제도 있지만 성공률이나 분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두려움 가운데 쩔쩔매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눈에 가장 뛰어나 보이는 인간이 위협을 당하고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집중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바이러스에게 숨어 다니는 것 같다.
지금까지의 경과를 놓고 보면 이것이 최선이라는 것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왜 하나님은 이런 바이러스를 없애주지 않으시는 것일까?
고난이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 요소들을 제거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 요소들을 제거해 주시기도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질적인 뜻은 이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이것은 깨끗함과 무관한 말씀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그래서 하루에 6번 손을 씻는다고 한다.
내 영혼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서, 또 그 말씀에 순종하는 의미에서.
지금은 초 과학시대라고 한다.
21세기. 지금 내가 글을 써서 외국에 있는 지인에게 보내는 것은 불과 몇 초도 안 돼 전달된다.
로봇으로 어려운 수술을 한다고 한다.
온갖 것이 최상으로 발전해서 택시를 타고 공중을 날아다닐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바이러스 하나를 해결하지 못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다 마찬가지가 아닐까?
해결능력을 구하는 것보다, 한 가지 조심하면 되거나 안 하면 문제될 것이 없는 큰일들이 많을 것이다.
문제를 일으켜놓고 그 다음에 수습하는 것은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른다.
노력했음에도 우리의 능력 밖으로 발생하는 문제들도 있지만, 우리 자신이 단정한 삶을 살면 간단할 문제를, 문제를 만들어 놓고 해결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은 그리 권장할 만한 것은 아닐 것이다.

여러분, 지금이라도 조심하세요.
이것은 믿음으로 물리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이 어려움을 극복하게 합니다.
영적인 삶에서도 우리 자신이 거룩하면 지저분한 일들이 일어나 나를 위협하는 일들이 훨씬 줄어들 겁니다.
속히 극복하기를 기도하고 있고, 또 여기서 많은 교훈을 얻고, 더욱 발전하기를 바라고, 하나님과 더욱 굳건한 관계를 갖고 온전한 신앙인이 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