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8

코로나는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1)-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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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지난 2년을 보낸 지금을 보면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신앙이 그렇다.
비대면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어 드렸던 사람들이 이제 대면예배로 환원되었음에도 적잖은 숫자가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 교회 같은 경우는 대면예배가 가능하게 되자 비대면 예배의 중계를 종료했다.
왜냐하면 신앙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림으로써 중심을 가져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예배를 드릴 때 인터넷을 켜놓고 이런저런 행동을 하면서 편안한 자세에서 예배를 드린다면, 지금은 편리해서 좋겠지만 그것이 결국 우리의 신앙을 약화시킬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아이고, 답답해라. 지금 어느 시대인데, 이제는 코로나가 아니라도 점점 비대면이 늘어나고, 비대면으로 소통하게 될 텐데 시대에 발을 맞춰야지요.”하고 말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기독교에 관련된 사람들이 인터넷교회니 인터넷을 통한 기독교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마치 큰 광맥을 발견했다는 듯이.

가상의 교회, 가상의 신앙은 순식간 몰락한다고 나는 보고 있다.
교회에 한 번 안 가면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두 번째 안 가면 더욱 받거나 아니면 가책이 얕아질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 안 가면 확실하게 얕아지는 쪽으로 가게 되고 신앙은 거리가 멀어진다.
언제든지 마음먹으면 교회에 올 수 있다고?
나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행했는데 거기에 대한 경계나 징계가 없이 괜찮은 상태가 유지되면 ‘뭐, 괜찮네!’ 하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바로 잘못된 일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익숙하게 혹은 스릴 있게 행한다.
도둑질을 한 사람이 첫 번째 도둑질을 했을 때에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그러나 여러 번 하게 되면 ‘괜찮네!’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이 습관이 되면 결국 감옥에 가는 신세가 된다.
그다음 어떻게 될까? 회개하거나 반성하고 고칠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내가 도둑질을 여러 번 할 때도 괜찮았는데 왜 이번에 걸려들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몰입한다.
그렇게 되면 도둑질한 자체의 성격을 규명하기보다는 도둑질 기술을 분석해 더욱 완벽한 도둑질을 하려 든다.

진리를 진정으로 받았고, 그 은혜 가운데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를 알 것이다.
그리고 몸으로 직접 나와 예배드리면서 함께 공감하고, 함께 찬양하고, 함께 은혜를 받고 영광을 돌리는 감격을 누리려 할 것이다.
그러나 친구 따라 하는 것과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꼭 교회를 가야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인가?’라는 반문을 하면서 ‘오늘은 어쩔 수 없이 간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면 그 사람은 비대면을 환영할 것이고, 그다음은 비대면조차도 대면하지 않으려고 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때로 사람은 게으를 수도 있고, 피치 못할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예배부터 드리고!”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편안하고 강산이 보기 좋아도, 예배 안 드린 마음에 그것이 좋게만 자리잡을 수 없을 것이니까 말이다.
또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예배가 소홀히 되면 속상하게 된다.
너무나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내가 인터넷 예배실황을 종료한 것은, 그동안은 성도들이 코로나로 교회에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마땅히 중계를 했어야 했고, 이제는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마땅히 종료시킨 것이다.
불신자, 환자, 피치 못할 상황에 있는 자들에게 봉사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불신자가 영상이나 방송 설교를 보고 믿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되며(보기나 할까?), 병중에 있는 성도들이나 피치 못한 상황에 놓여 교회에 나올 수 없는 분들은 그들 나름대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고, 시대 상황을 외면할 수는 없으나 정말 진리를 위해 신앙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상황을 따라가거나 앞서간다는 것 자체로 진리를 잘 대변한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고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그 존재 자체를 영광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용물이 아니고, 하나님과 나 사이에 주체는 하나님이지 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 신앙이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또 하나님을 건강하지 못하게 가까이 하거나 오락가락하는 것도 환영할 것이다.
사단은 불신자도 좋아하고, 무당도 환영한다.
우리는 건전하고 흔들 수 없는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야 한다.
이것은 나의 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