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09

인생은 끈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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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인생을 바르고 멋지게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간단히 답을 내놓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인류는 수많은 세월을 살아왔고, 셀 수 없는 만큼 현자들이 나와 이 질문에 답하려고 했으나 한두 가지 통찰만 제공했을 뿐 명확한 답을 주지 못했다. 사람은 아기로 태어나자 바로 인생이 시작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의 뇌에서부터 조금씩 감각과 생각, 이성이 생겨난다. 많은 동물들 가운데 유독 인간만이 오랫동안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는 기간을 갖는다. 배우지 않으면 아는 것이 별로 없고, 노력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

내게 웃지 않을 수 없는 어리석은 습관이 있었다. 나 스스로는 아주 부끄럽게 생각한다. 초등 2학년 말에 아버지의 전근으로 시골에서 부산이라는 도시로 이사를 왔다. 스스로는 생소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고, 학교에서나 동네에서 관심을 주지 않는 아이였다. 내 아래 7살 차이나는 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래저래 찬밥신세였다. 적어도 동생이 태어나지 않았던 시골생활은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교감선생님 아들이라고 주변에서 알아주고, 집에서 공부를 별로 하고 가지 않아도 학교에서 그런대로 잘하는 축에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살다가 도시로 나오니 왕따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버림받은 아이처럼 집과 학교를 왔다갔다했었는데, 당시 나의 성적은 반의 중간 정도였다. 반 친구 대부분은 과외수업을 받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해 좋은 성적을 받을 리 없다고만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는 선생님이 수업하다 말고 아이큐 테스트를 한다고 하면서 특별히 인쇄된 종이들을 나누어 주면서 시간 안에 풀라고 했다. 성적과는 상관없다는 말과 함께. 시험지 같은 것을 받아보니 정말 공부와는 상관이 없는 문제들이었다. 며칠이 지나 쉬는 시간 운동장 그네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고 있는데 담임선생님과 가까이 지내는 한 친구가 달려와 “야, 아이큐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우리 반에서 네가 제일 높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나는 믿을 수 없었다. 함께 있던 친구들도 의외라는 듯이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종이 울리고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 선생님은 내 아이큐가 최고점이라고 하면서 전교에서 1등이라고 했다. 반 친구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가득했고, 숨을 고르기도 전에 성적 일등인 아이를 쳐다보면서 “쟤는 얼마예요?” 아이들은 선생님께 물었다. “110!” 그 순간 나는 아이큐 병에 걸렸다. ‘아, 나는 천재구나… 정말 천재일까? 천재는 공부를 안 해도 성적이 높게 나오는 거 아냐?’ 그 후 나는 공부를 하지 않기로 했다. 천재니까! 내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스스로 천재가 아닌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끝까지 천재이고 싶어 공부를 하지 않거나 대충하다가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낙방했다. 아버지가 다시 전근을 가 근무하는 시골중학교로 나만 따라가 입학했다. 그곳은 한 학년에 두 반인데, 도시에서 성적이 반에서 절반하던 아이가 시골로 갔으니 공부 안 해도 1등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더욱이 나는 천재니까(누가 나를 천재라고 했는지 모른다.) 천재가 시골 아이들과 경쟁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첫 시험에서 전교 2등, 학년 전체가 두 학급이라도 도시 초등학교의 한 학급과 비슷한 숫자였다. 한편으로 기분 나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나쁜 것은 당연히 1등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자신했는데 2등이 되었다는 것, 기분이 좋은 것은 2등이라도 도시에서는 해보지도 못했는데 그곳에서 하게 되었다는 것 때문이다. ‘다음에는 좋아지겠지’라는 배짱 좋은 기대를 가지고 대충 그냥 지냈다. 뭐하고 지냈냐고? 도시에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빈둥거리면서 지냈다. 그 후로도 시골에서 10등 안에는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별로 공부를 잘하는 아이로 나 자신에게도 기억되지 않는다. 아버지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고등학교 때는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런 정도의 성적으로 부산이라는 도시의 일류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슬슬 들면서, 나 자신이 초라하게 여겨졌다. 누구 말대로 아무리 영특하더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모른다는 말처럼 나는 썩어가고 있었다. 사실 영특한 것이 아니라 멍청한데도 영특하기만을 바라고 시골에서 그냥 지내고 있었다. 자연을 벗 삼았다고? 천만에 자연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썩어갔다. 내 인생을 생각해보고 앞날을 생각해봤다. 완전히 뒤집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나였다. 어떻게 나를 완전히 바꿀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모든 것을 다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언어부터, 그러려면 생각부터 바뀌어야 된다는 것을 알았고, 또 삶이 바뀌려면 행동 하나하나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행동이 모여서 습관이 되고, 그래서 더 나은 인간이 될 것이라는 것. ‘아, 만약 노력했는데 성과가 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나 혼자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내 속의 게으름은 이렇게 나를 포기와 절망의 늪에 주저앉기를 유혹하고 있었다. 운동을 좋아해서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 운동을 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된다. 그런데다 한창 자라는 때인지라 잠이 쏟아져 내렸다. 밤에 호롱불 밑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고역만큼이나 힘들었다. 아, 이러다가 인생을 망칠 거야! 하나님께 진심어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난 할 줄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먼저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세요.” 내 최고의 적은 자신은 그렇지 못하면서 천재라고 여기고 싶어 하는 것. 정말 이 괴물의 마법에서 깨어나질 못했다. 얼마나 달콤한 병인가. 그때부터 겸손해지는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난 아무것도 아니야. 하나님은 나를 대단한 존재로 여기시지 않고 나를 겸손하게 노력하시는 것을 원하셔!’ 달팽이는 끈기로 방주에 도착했을 것이고 나도 그 끈기를 배우고 싶었다. 내가 어떤 성과를 얻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그 병에서는 풀려날 것이고, 인생을 사는 끈기를 배우게 될 것이니까. 결과를 얻기 전에 먼저 과정을 얻기로 다짐했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다. 좋은 결과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단지 그 결과에 대한 상상만으로 끝난다든지, 상상하고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포기해버리든지… 왜 성경에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인내로 경주하도록 하라’고 했을까? 낙심할 일이 많고, 인내 없이는 제대로 된 경주를 해낼 수 없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뭐하고? 하나님은 경주할 일이 있어도 대신해 주시거나 그 경주에서 제외시키지 않고 우리의 경주에 함께 하시면서 결국 영광의 자리에 서게 하신다. 비록 금메달이 아니라도 금메달의 인생을 살게 하시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게 쉽게 되냐고? 정말이지 가능하다. 내가 해봤으니까! 뭘 해봤냐고? 끈기 없는 인생은 쓸모없다는 것을 깊이 깨달은 것이다. 내가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