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8

의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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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봄, 열심히 공부해야 할 목적이 생겼다.
내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기독교 학생으로 주목을 받고 있고, 널리 알려진(?) 반장이 되어 있었으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 한다는 나름 판단이 섰다.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 같았다.
마음을 다져먹고 계획을 세우고 기도하면서(지금까지 공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 적은 없었다.) 노력했다.
목표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대형사고가 터졌다.
전 과목을 치는 중간고사 하루 앞에 감기몸살이 걸려 드러누운 것이다.
몸을 일으켜 세울 수도 없었다.
그동안 공부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어떡하든 일어나 하루라도 시험을 치려 했으나 병상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그러니 전 과목을 치는 중간고사 기간 동안 한 과목도 치르지 못한 것이다.
속이 상하는 것은 둘째 치고 자존심이 상했고, ‘왜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려고 하고 노력하는데도 도와주시지 않는가?’ 하는 의심쩍은 불만이 내면에서 폭발하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기도만 해도 도와주시는 것이 옳을 텐데, 기도하고 노력하고 그것도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자 하는 기특한 생각을 가진 자를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0점을 만들어 버리다니?’
심령에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어느 정도 회복해서 학교에 갔을 때 친구들이 왜 시험 치지 않았는지 의아해 했고(마치 자신감이 떨어져 치지 않은 양), 담임선생님도 할 말을 잃으셨다.
나는 그동안의 성적도 있으니 30%라도 인정을 받기를 바랐지만 학교의 규칙은 0점 처리.
그 후 월말고사를 꼬박꼬박 쳤음에도 1학기 합산성적으로는 낙제에 속했다.
1학기 말 담임선생님이 상위와 하위를 발표하셨는데, 이 사실이 밝혀지자 교실이 또 뒤집어졌다.
‘반장이 낙제를 한다?’
이 얼마나 재미나는 사건인가!
그 뒤 나름대로 노력해서 낙제를 면하고 중간 가까이 정도까지 만회했다.
그러나 기도도 안하고 그냥 내 힘으로 공부를 할 때가 더 낫지 않은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면서 노력했음에도 그냥 내 실력대로 치지도 못했고, 그래서 비참한 자리로 떨어지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이 계시는가? 기도를 들으시는가? 영광을 돌리고자 하실 때 도우시는가?’ 등의 회의가 내 마음에 차고 넘쳤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지자 나는 단호하게 결심을 했다. 하나님을 떠나기로.
내 방식대로 살아보고 필요하면 하나님을 다시 찾든지 하겠다는 것이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그들도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은 매 일반으로 느껴졌고,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직접 나를 가르쳐주는 때 마음을 바꾸어 다시 돌아와도 나쁠 것은 없다고 판단했다.
선언과 같은 말씀을 어머니께 드렸다.
“난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겠습니다. 시간 지나 내 마음이 내키면 나가겠습니다. 나에게 신앙을 억지로 강요하지 마세요. 내가 교회로 돌아오려면 하나님이 뭔가를 나에게 보여주셔야 합니다.”
어머니는 기가 막혔는지 별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이 말씀은 한 것 같다.
“그렇게 뭔가 나타나야만 믿는 것만이 신앙은 아니다.”
이런저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잃어버린 중간고사 성적을 회복하기 위해 이년 내내 죽을 고생하고 화가 가시지 않는데…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녔던 내가 교회를 멀리한다는 것 또한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교회 다녀도 불편, 안 다녀도 불편했지만 그래도 신앙이라는 것에 속박 받지 않고 내 마음먹은 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그럭저럭 그리 내세울 것이 없는 세월을 보내다 군 입대하게 되었다.
중대 훈련생 대표가 되어(키가 커서인지 이런 일에 잘 뽑힌다.) 훈련 중 중대원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일들이 잦다 보니 편도선이 부어 하반기 훈련은 빼먹기 일쑤였다.
그러다 내가 배치된 부대는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 집에서 버스로 30여분 거리에 있는 공병기지창이었다.
어머니가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별 반응이 없으셨다.
나는 다소 실망이 되었지만(어머니는 내가 최전방으로 가기를 바라셨나? 내 위의 두 형들은 모두가 최전방 출신이다), 그래도 형들처럼 아무도 모르는 머나먼 최전방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는 기뻤다.
부대에 배치되자마자 생각지 않게 인기를 독차지 했다.
운동 때문이었는데 배구였다.
배치 받아 도착한 첫날 행정 선임이 와서 “여기에 운동할 줄 아는 사람?” 하고 손들라고 했다.
아무도 손들지 않았다.
그는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야, 너 키가 큰데 운동할 줄 몰라? 속였다가 나중에 들키면 혼날 줄 알아!”
“할 줄 알기는 하지만 잘 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무슨 운동 해봤어?”
“그냥 학교 반 친구들과 하는 운동들을 했습니다.”
“무슨 운동이냐고? 축구? 배구? 뭐야?”
“배구를 조금 해봤습니다.”
“야, 잘 됐네. 우리 중대에 배구선수가 필요해.”
그리고 바로 배구장으로 이끌려 나갔다. 몇 번 손을 맞춘 후 내가 공격수 자리를 차지했고, 그것도 주공격수가 되었다.
난 배구선수를 해본 적이 없다.
단지 각 학년이 2학급씩으로 구성된 조그만 시골 중학교에서 쉬는 시간과 방과 후 하는 놀이란 배구였기 때문에 그냥 배구를 배웠고 놀았을 뿐이다.
그때 학교에서도 배구를 잘한다는 말은 들었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잘할 줄이야?!
그 부대 안에서는 그랬다는 것이다.
나도 나를 새삼 확인하고 신나게 배구를 했다.
계급은 최하위였으나 운동장에 가면 내가 최고참이 된 것 같았다.
부대대표가 되고 다른 부대와 결승전 경기를 하던 도중 예기치 않은 부상을 당해 바로 국군통합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난 잘 되는 일이 없어.
의욕을 가지고 한 번 해보려면 꼭 변을 당한다니까!
너무나 속상하고 화가 났다.
결국 통합병원에 입원하여 여러 가지의 검사를 받았고 그런 과정에서 하반신 마비가 와서 베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어, 이상하게 돌아가네?’
‘이것이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손짓일까? 너무 쉽게 굴복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아니야, 곧 회복될 거야.’
수많은 생각으로 나날들을 보냈다.
뭘 하고 지냈는지 생각도 잘 안 난다.
입원하고 베드에 누워 생활한지 수개월이 지나가고 있을 때 병원당국에서 의병제대 의사를 타진해 왔고, 병동 안 같이 생활하는 선임들의 하루 속히 제대를 해서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충고를 받아들여 나는 서둘러 제대를 했다.
그 다음은 집에서 가족들에게 부담만 주는 치욕적인 세월을 10개월이나 보내게 되었다.
하나님은 나를 갉으시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그 당시 내 마음에 스며든 확신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이 생각만 하면 막막하고 암울했던 시절이 나에게 되살아나는 것 같다.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