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5

의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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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해야 해요?”
“그렇게 창조되었고, 대요리문답에도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그건 억울해요. 우리 마음대로 잘 살 수 있도록 해야지, 하나님을 즐거워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를 교리에 가두는 것 같아요.”
“성경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지. 그대로 받아들여!”
“……”
이것은 고등학생시절 담당 전도사님이 야심차게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한 첫날, 나와 나눈 대화였습니다.
내 마음 속에는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가?”에서부터 많은 신앙에 대한 의문들이 쌓이고 쌓이던 때였습니다.
그 다음 주 “하나님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라는 주제를 다룰 때, 사실 이미 나는 앞으로 고등부 성경공부에 참석해야 할 것인지 포기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주제를 가지고 “자연을 보고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다.”는 식의 설명을 했을 때 나는 가만있지 못하고
“어떻게 자연을 보고 하나님을 알 수 있나요?”
“피조물을 보고 창조주를 생각하는 것이지.”
“그 생각을 못하면 버림을 받은 것인가요?”
“무슨 그런 소리를…?”
“제 뜻은,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을 해줘도 이해하지 못하고, 또 자연이 저절로 생겼거나 진화되었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그러면 그 사람들은 하나님께 제외된 사람들인지 궁금해요.”
“네가 믿음이 부족하구나. 스스로 좀 더 기도해야겠다. …”
“……”
그 다음 주, 담당 전도사님은 다른 교재로 바꾸겠다고 하시면서 주기도문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고등학생들에게 대요리문답을 가르치는 것이 벅차다고 생각한 것 같았습니다.
내가 던진 두 번의 질문은 친구들의 정적을 깨뜨렸고, 전도사님을 큰 벽에 부딪히게 한 셈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나도 그 시간을 통해 우주공간에 버려진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왜 다른 아이들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잘 따르는데 나 혼자만 온갖 의문을 품는 거지?’
기독교에도, 교회에도, 나 자신에게도 불만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내가 지금 목사가 되어 있으니 신기한 노릇이지요?
그 의문들은 어떻게 풀었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먼저, 그 의문이 풀리기나 했냐고 묻는다면 의문이 없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지요.
없어지게 된 것은 한 단계, 한 단계를 지나면서 된 일입니다.
자연과 동식물 모든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믿습니다만 그것으로 하나님을 해석한다는 것은 좀 무리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현재는 과거로부터 왔고 현재는 미래로 간다는 방식을 생각하면 인과법칙에 의해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창조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러면 이런 질문이 가능합니다.
창조자는 누가 창조했는가?
성경은 이렇게 설명해요.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다.”
“에이, 그런 것이 어디 있어!”라고 거부하면 해결책이 생기지 않습니다.
성경도 왜 스스로 계시게 되었는지를 말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스스로 계시지 않고 하나님도 창조되었다면 그분은 창조주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의 종지부를 찍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생긴 이래 줄곧 의문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의문을 다 풀고 살지는 못했습니다.

참, 내게 그런 의문들이 사라지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요?
의문에 의문, 끊임없는 의문은 결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이 내가 처음으로 얻은 깨달음이라고 해야 할까요?
나의 아버지가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이 아닌 먼 곳에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가족들에게 왔지요.
나는 아버지가 그곳에서 교장선생님으로 있는지 의문이 갔습니다.
“혹시 다른 데서 돈을 벌어서 한 달에 한 번씩 오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그곳에서 교장선생님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5,6살 때였으므로 가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죠.
어머니가 근무하는 학교는 앞산 너머 있다고 했는데 사실인지 알려면 나 스스로 가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죠.
하루는 마음먹고 혼자 집을 나서서 앞산을 걸어서 넘어갔습니다.
00고등학교라는 말은 들었기 때문에 그곳 근처에 가서 사람들에게 물으면 될 것입니다.
집을 떠나 산으로 올라 공동묘지를 지나 혼자서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아픈 다리를 끌고 드디어 그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아침에 출발했는데 오후 2시가 넘었던 것 같습니다.
정문을 지나자 부엉이가 눈을 껌벅이면서 창틀 속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랐지만 그래도 엄마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엄마도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여기고 들어갔는데 정말 엄마는 근무 중이었습니다.
나를 본 어머니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어떻게 오게 되었냐고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말했지요.
어머니는 기가 막혀 했습니다.
아직도 근무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나에게 온 그 길로 다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떼를 잘 쓰지 못하는 나는 그냥 돌아와야 했는데 죽는 줄 알았습니다.
공동묘지를 지날 때 ‘내가 저기 들어가는 게 아닐까?’ 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날은 어두웠고, 온 몸에는 땀이 범벅이었고, 몸살이 났습니다.
도착하자 어머니가 뒤따라 들어오셨습니다.
나를 보내놓고 마음이 편치 않아 버스를 타고 뒤따라오신 거였습니다.
나는 의문이 풀렸지만 희생은 엄청났습니다.
분명히 깨달은 것은, 매사 이렇게 확인하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믿어야 할 것을 믿지 못하면 살 수 없다!
그렇다고 그때부터 철이 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그만 하나의 시작일 뿐이었지요.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의심은 어떻게 해결되었냐고요?
(다음에 계속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