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6

나는 도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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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보면 자신이 어릴 적, 남의 집 배 밭 서리한 것을 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친구들과 배 밭을 서리한 것은 배를 먹고 싶은 욕망에서 한 일이 아니라 불구자인 배 밭주인을 골려먹기 위한 비열한 행동이었음을 참회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주인이 낮잠이 든 사이 달려 들어가 배들을 따서 도망가는 일을 한 것입니다.
주인은 다리를 저는 불구자였기 때문에 자신들을 잡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 짓을 했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부분을 보면서 마음이 뜨끔했습니다.
나도 친구 따라 서리를 했었거든요.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이나 했습니다.
그때 나는 야비하다기보다 어리석은 아이였습니다.
처음은 고구마 밭을 서리했는데 친구들 중 한 친구의 밭을 서리하자고 모의하여 같이 가서 했습니다.
그때가 8살 정도였는데 친구들이 하자고 하니 따라간 것입니다.
나쁜 짓인 줄 알면서도 스릴이 넘칠 것 같았고, 한편으로는 자기들만 따라오면 된다고 하니 따라가 서리를 하고, 컴컴한 원두막에서 묻은 흙을 대강 털고 나누어주며 먹으라고 해서 어리둥절해 하며 손에 받아들었는데, 그때 주인이 들이닥쳤습니다.
놀라 모두 도망갔는데 한 친구가 잡혀서 자백을 했고, 그 중 내가 그 동네 중학교 교감선생님 아들이란 이유로 3관 값을 물어주게 되었습니다.
나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고 결백을 아버지 앞에서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집안에서는 나를 어리석은 아이라 놀렸습니다.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다음 해,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자, 같은 친구들인지 다른 친구들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밤에 참외 밭을 서리하러 가자고 또 꼬드겼습니다.
내가 주저하니까 밤이라 괜찮답니다.
이번에는 들키거나 잡히지 않았고 우리는 서리해 온 참외를 농기구를 보관하는 창고에 들어가 어두운 밤에 더욱 캄캄한 어둠 속에 숨어서 겉에 뭍은 흙들을 털어 대강 뱉어내고 먹었습니다.
나는 그리 하고 싶지 않았는데도 친구들이 하자고 하니 하고, 그들이 즐거워 낄낄거리면서 먹고 너도 먹으라고 할 때 한 입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왜 나는 거부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내 속에 그런 근성이 있어서일지, 나의 가족들이 놀리는 것처럼 어리석어 친구 따라 한 건지, 그때를 생각하면 한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자기 복숭아밭에 서리를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야, 자기 밭을 서리하는 사람이 어딨어?”
“아직 복숭아가 익지도 않았잖아?”
“너의 아버지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런 말들을 하고 거부를 했지만 그 친구의 괜찮다는 말에 또 이끌려 그날 밤 달빛 아래 숨어들어 복숭아 여러 개를 서리했습니다.
친구가 자루에 담아주기에 받아오기까지 했습니다.
‘복숭아 밭 주인집 아들이 주는 것이니까 괜찮은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서리해서 가지고 오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좀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하지 말아야 하는 그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내 속에 이런 근성이 숨었다가 누가 자극을 주면 고개 들고 나타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친구들이 자기의 것을 나에게 주고 싶은데 자기 마음대로 줄 수 없으니까 몰래 자기 밭을 희생해서 나를 기쁘게 해주려고 하는 어리석은 행동에 은근히 고마워하면서(그때는 몰랐지만) 따라갔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들은 나에게 일그러진 형태의 사랑을 베푼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배 서리를 한 것을 놓고 공개적으로 참회를 했다면 나는 얼마나 길게 참회를 해야 할까요?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을 야비했다고 했지만 나는 어리석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이건 또 무슨 죄일까요?
내가 그보다 더 심한 것으로만 여겨집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도둑의 근성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북한 사람들 사이에는 양심의 가책이 없이 도둑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남의 것을 훔친다기보다는 그 물건이 있는 장소를 옮기는 것이라고 여기고, 국가 것을 훔치는 것은 그것은 인민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누가 먼저 빼돌리는지가 똑똑함의 상징이란 듯이 말하는 것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는 말이었습니다.

첫째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 기준이 분명해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인지, 다른 사람이 내 것을 그렇게 해도 괜찮은 것인지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철없고, 생각 없고, 친구 따라가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때로는 그런 일을 생각하면 내 자신이 처량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런 일로 처량해지고 싶지 않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확실하게 세 번은 그런 일을 했으니 이제는 비슷한 일도 없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어쩌면 참회이고, 어쩌면 나의 허술한 점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이를 계기로 더욱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살기를 다짐하게 됩니다.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7:23)
우리는 선한 자가 아니라 악을 다스려 선하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지요.
왜냐고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살고자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