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01

다르다 너무 다르다.

column_2018_10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목사인 나는 ‘내가 사람이란 무엇인지? 얼마나 알까?’하는 생각에 늘 수험생이 공부를 하지 않아 아는 것이 없는 듯 위축된다. 개체로 보면 간단히 인간인지 아닌지 구분하지만 그 정신세계는 너무나 기묘하기 때문에 알려하면 할수록 더 미궁에 빠지는 것 같다. ‘사람을 좀 알아야 사람을 잘 이끌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만 가득할 뿐 별로 아는 것이 없다.

최근 손녀들이 태어나 자라는 것을 보면 더더욱 같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서로 다른지를 실감한다. 하루는 두 자매가 서로를 향해 이런 저런 말을 하는데, 내용은 잘 알아듣지 못하겠고 대강 “유니콘은 어떤 것이고, 또 하니콘도 있어. 하니 콘은 어떠어떠한 것이야.” “응, 나도 알아 유니콘은 어떤 것이고, 하니콘은 어떤 것이지..” 이런 말을 심각하게 나누고 있어서 내가 끼어들었다. “유니콘과 허니콘만 있는 것이 아니야. 또 있어.” “뭐예요?” “유니콘, 허니콘, 꼬깔콘, 아이스콘! 아마 더 있을걸?” 그랬더니 아이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한 아이는 삐쳤다(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다른 아이는 “아이, 할아버지는 장난꾸러기!”(이것도 누구라고 말하지 않겠다. 실명 거론하면 곤란해지니까.) 그러면서 웃는 것도 아니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손녀가 이 둘 말고 또 있다. 지난 여름 이 아이를 만났는데 유니콘이 그려진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그림이 뭐니?” “유니콘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거예요.” 유니콘이 뭔지는 모르지만 이마에 한 개의 긴 뿔이 달린 말인지 염소인지 그렇다. 특이하기 때문에 신비감을 주는지 모르겠다. “아, 그래? 유니콘을 좋아해?” “네” “유니콘만 있는 것이 아닌데..?”

“뭐가 있어요?” “허니콘” “아, 맞아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야?” “또 있어요?” “응, 꼬깔콘” “네, 네, 맞아요. 맞아요.” 능청맞게 웃으면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한술 더 떠서 “나 꼬깔콘도 좋아해요.”

‘아, 달라도 너무 다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누가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쨌든 싱거운 유머도 잘 받아들이는 아이는 반에서 인기가 짱이라고 한다.(안 봐서 증명할 수는 없다.) 자신은 장래희망이 ‘유명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유명해지는 것은 간단하다고 일러줬다. “어떻게요?” “너의 집 앞이 경찰서잖아? 밤에 거기 가서 경찰차 위에 올라가서 네가 잘 추는 춤을 추는 거지..” “그러면 잡혀가요.” “안 잡혀가” “왜요?” “넌 어려서”

“아니 그것은 못하겠어요. 아닌 것 같아요.” “어쨌든 유명해질 거야.” “어떻게요?” “경찰이 너를 차 지붕에서 내려오라고 하겠지? 그런데 또 그 다음 날 올라가는 거지. 지나가던 너의 반 아이가 보고 놀라서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말하겠지? 그렇게 되면 학교와 네가 사는 동네에서 가장 유명해져.” “아아, 그것은 못하겠어요.” “나는 네가 유명해지고 싶다고 해서 그냥 말해본 거야. 유명해지면 안 되는 유명도 있다는 거지.” “그건 그러네요.”

며칠 뒤 어느 날, 두 손녀의 엄마인 내 딸이 새 학기를 맞아 아이들이 학교를 갔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쟤가 학교 가면서 쪽지를 써가지고 담임선생님에게 주었다네요. 그 내용은 자기는 예민하고 공부하는 중에는 멍하게 있는 경우가 있는 특징이 있다고 써서 줬대요.” “그으래??” “그랬더니 선생님이 막 웃으면서 자기에게 잘 해주더래요. 그래서 선생님이 대단히 좋은 선생님이래요.” “아아,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구나. 다 자기 사는 방식이 있네??” “그런가 봐요.” 사실 나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 아이가 그렇게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래야만 살 수 있어!] 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각기 자기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욕심은 아이들을 사랑한 나머지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면 어떻게 될까를 걱정한다. 그리고 더 큰 욕심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면서 그 아이들보다 뛰어나기를 바란다. 욕심도 많으셔. 나는 많은 사람들에 대해 읽어보고 살펴보았지만 둘 다 충족시키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각기 다른 인격을 주어 창조하셨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과 조화를 잘 이루는 사람, 어떤 사람은 좀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능력이 없거나 모든 것에서 실격이지는 않다.

문제는 우리의 시각을 바꿔야 한다. 고칠 것을 고쳐주도록 해야겠지만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격을 존중하는 것이다. 실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각양각색이다.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은 능력과 조화인데, 능력은 향상시키고 조화는 숙달하는 것이다.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목적과 살아가는 방식을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세월이 지나면 이 세 아이들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또 그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향해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내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해 주실 것과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하려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