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3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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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를 말합니다.
다르게는 믿음을 가졌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나 교회에 다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믿고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전인격적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거나 모호하게 들릴 수 있으므로 간단히 설명한다면, 하나님의 성품(속성)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전능, 전지, 무소부재(편재(遍在)), 미리 아심, 영원, 지혜, 완전, 무한, 눈으로 볼 수 없음, 등등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 중에 전지전능을 좋아하고 또 그 중에서 축복, 사랑, 위로, 희망 등으로 나타나시기를 기대합니다.
실제 신앙인들 가운데 여기에만 초점을 맞춰서 신앙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한국교회의 보편적 신앙관점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 축복을 받을 것인가에 집중하게 되고, 그 증거로 방언이나 신유나 계시 등 은사를 추구하는 신비주의가 범람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으려면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고, 성령세례를 받은 증거는 방언이며, 방언으로 기도하면 응답이 더 잘 되고, 성령이 임해서 방언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과 직통으로 통할 수 있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니까 초월적인 어떤 현상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언의 은사를 받았으면 하나님을 만난 것일까요?
여기에 회의를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사 즉 방언이나 계시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 주를 위해 사는 사람이라거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모습보다는 자신의 우월감 혹은 이기를 추구하지 그리스도의 인격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여겨지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은사는 곧 하나님을 만났다는 말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것과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은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은 연결선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통해 은사를 주고 그 사람을 드러내기보다는 인격적으로 그를 통해 역사하기를 기뻐하신다고 봐야겠지요.
바울이 주장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사를 받는다는 것에 대치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은사를 받음과 동시에 인격적인 만남을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이 또한 무엇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영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 표현을 빌자면, 인격은 지정의(知情意)의 3요소가 포함된 것이고, 지정의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인격적 만남이라고 합니다만, 나는 이렇게 봅니다.
어떤 형태로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절대자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환희나 기쁨 가운데 선명하게 각인되는 경우도 있고,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거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됨으로 격하게 비천함을 깨닫게 되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런 현상보다는 그 가운데 강렬하게 하나님을 절대자로 인식하거나 깊은 마음의 고백입니다.
그런 작용은 성경을 보거나 설교를 듣거나 어느 순간 다른 일 하다가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마치 운명적인 역사라고 할까요(?)
그렇게 다가옵니다.
이런 인격적인 만남은 다른 사람의 분위기에 잘 휩쓸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내적인 강렬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 하나님!”의 순간,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순수한 고백을 하게 되면 이런 것들로 우월적 존재가 된다고 생각지 않고 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작용됩니다.
헌신!

우리 신앙이 상황에 휩쓸리고, 나도 모르게 좋고 나쁨이 반복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무엇이 좋아지냐고요? 형통해질까요? 은사가 충만해질까요?
아닙니다. 영혼의 심연에 뿌리를 둔 신앙을 갖고 주님과 동행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의 긍지를 가지고 살게 됩니다.
고난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고난을 어리석게 자청하지 않으려 하고, 고난 닥쳐도 고난 가운데서 주님과 함께 견디고 이겨나갑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힘과 희망을 갖습니다.
왜냐고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아니까요.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갖게 된 사람은 또 다시 새로운 만남을 갖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만남이요, 영원한 동행입니다.
그러니까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남은 한순간 온전한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지향점을 갖고 계속 진행됩니다.
일단 이 길에 들어선 사람은 길이 험하든, 황금 표지판으로 유혹하든(아마 마음은 잠깐 흔들릴지 모르죠.), 사탄이 유혹하는 쪽의 길이 금길이든 그것들이 결정적인 타격을 주어 이 길, 저 길을 들어서서 혼란 속에 빠지지 않습니다.
사탄이 말하겠죠. “뭐 그리 바빠? 천천히 놀고 가!”
그는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나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