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1

우월함은 방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column20171105

얼마 전에 걷기운동을 하려고 운동장에 갔습니다. 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한 중년의 부인이 혼자서 트랙을 열심히 뛰고 있었습니다. ‘과연 얼마나 오래 달릴 수 있을까?’ 나는 몸을 풀고 서서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걸을 때 그 부인은 나를 앞질러 달렸습니다. 두어 번을 그렇게 되자 마음에 ‘이 사람을 뒤따라 뛰면 상당히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인이 나이는 들었지만 선수처럼 달려 자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뒤따라 달렸지만 나는 한 바퀴도 못 돌아 숨이 차 달리기를 중단하고 걸을 수밖에 없었으나 그 부인은 조금도 자세가 흐트러짐 없이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30여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달리는 것은 보는 나에게 경이로운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마치고 앉아 쉬는 데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 달립니까? 숨을 어떻게 쉬고, 어떻게 하면 계속 달릴 수 있는지요? 난 한 바퀴도 숨이 차 못 달리는데요.” 그 부인의 답변은 “달리는 사람들이 들숨이 있고 날숨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냥 달립니다. 며칠 전 308km를 3일 동안 달리는 코스에 참석해서 오늘 몸 풀러 나왔습니다. 몸 푸느라 살살 뛰었습니다.” 나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어떤 비법이 없나요?” “없어요. 그냥 뛰면 됩니다. 오늘 자기가 뛸 수 있는 데까지 뛰다가 또 기분이 나면 좀 더 달리는 거지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오래 달리기를 할 수 있습니다.”

 

뭔가를 잘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비법을 물으면 항상 이런 답이 되돌아옵니다. 물은 사람은 부끄럽기도 하고, 그 일에 대해 ‘나와는 맞지 않는가 보네.’하며 기가 꺾여버립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잘 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그냥 해요.” 라는 답이 오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나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 악기를 잘 연주하는 사람에게 물으면 동일한 답이 돌아옵니다. 내가 찾는 답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 그 잘난 사람들은 꼭 이런 식으로 말해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요?

 

인생을 살다보니 몇 가지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모든 일은 나면서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고, 무엇이든지 하면서 방법을 찾아간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꿈꾸거나 부러워하는 일은 방법을 알아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충실히 행할 때 하나씩, 하나씩 숙달되고 나름대로 방법을 찾고 그 일에 탄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는 것”입니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은 태어나면서 좋은 음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래를 바로 잘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노래를 계속 부르면 자신 혹은 다른 사람이 칭찬의 말을 해주거나 조금만 고치면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해줍니다. 그러면 그 방법을 찾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죠. 파바로티는 노래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직업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럴 정도의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고 계속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수를 하는 것이 어떤가에 대해 권유를 하고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노래만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좋은 점이 있었음에도 수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음정이 흔들린다, 고음에 문제가 있다, 등등 그런 말들은 그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그런 말에 그만 둘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얼마나 노력했을까요? 그의 성실함으로 결국 세기의 테너가 됩니다. 그러나 비평가들이나 기자들은 끊임없이 “악보를 볼 줄 모른다.” 는 등의 비판을 했습니다. 왜 악보를 볼 줄 모르겠습니까만 그것으로 그만두면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눈앞에 특출한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그렇게 잘 할 수 있나요?”하고 물음을 던질 것입니다. 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함정은 바로 ‘방법’을 묻는다는 것입니다. 성취는 방법으로 시작되지 않고, 방법으로 어떤 일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 묻는 것이 우리의 습관인 모양입니다. ‘실패자들은 방법을 찾는다. 그러나 목적을 이루려는 자는 방법을 찾아가게 되어있다.’ 자신만의 방법이지요. 자신이 그것을 파악해서 설명할 수 있든 없든 상관없이 자기가 해나가는 방법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에 가장 원칙적이고 바른 것은 “하라, 또 하라 그리하면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것이 바로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는 것으로 당신은 그 일을 이루어가게 된다. 하지 않으면 아무리 방법을 갖는다 해도 소용이 없다. 심지어 아무리 좋은 선생에게 배운다 해도 결국 포기하고 만다.” 자신의 마음에 하고자 하는 것과 그것을 행하는 노력이 꿈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윗을 볼 때, 어떤 방법을 가졌기 때문에 대단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믿음을 가졌고, 그 믿음 앞에 매우 성실한 순종자였습니다. 그는 일찍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진정한 왕의 자리에 오르는 데는 수많은 세월의 다듬는 작업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지금까지 한 말과 반대의 개념을 갖는 부분도 있지만 공통된 불변의 진리는 “잘 달리려면 달려야 한다. 그리고 또 달려야 한다.”는 것이고, 달리는 운동으로 얻게 되는 숙달과 유익은 그 다음에 오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믿음의 삶에도 마찬가집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어도 그것을 행하는 믿음의 행위가 없다면 사고에만 그치는 ‘사고 속 믿음’일 뿐일 것이고 믿음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달려봐야죠. 믿고 의지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