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01

없어서는 안 될, 많아도 곤란한

column_2017_10

언론 매체를 통해 경계 뉴스가 방송되는 것 중에 하나는 먹거리에 대장균이 많이 검출되었다는 것입니다. 300배 많게, 혹은 수천 배 많게 검출이 되었다는 말로요. 위생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때 항상 언급되는 것이 대장균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인식에는 우리 몸을 해롭게 하는 주범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유산균은 얼마 검출되었다고 요란하게 방송은 하지 않죠. 유산균은 좋은 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의학자의 글을 보니 대장균은 부패균이지만 우리 장 속에 없어서는 안 되는 세균이라는 것입니다. 대장균은 몸 속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대신 그 속에서 영양을 섭취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비타민을 합성해서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균은 하루에 280회까지 증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몸은 즉시 온갖 세균으로 가득할 것이고 결국 병들어 죽게 되겠지요. 그러지 못하게 방어대가 있어 전투를 하는데 그것들이 유익균, 흰피톨, 면역력 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몸은 지금 한창 전쟁 중인 것 같습니다. 부패균과 유익균의 전투에서 적당한 선을 유지하면 우리는 건강하다고 볼 수 있고, 부패균들이 득세를 하면 병들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몸담고 사는 세상도, 우리의 정신세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세상에는 악이 존재하고 활동을 합니다. 또 거기에 맞서 악을 막아내거나 악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잘못된 생각들이 듭니다. 그러나 건전한 생각이 그런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게 통제를 합니다. 반대로 좋은 생각을 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또 잘하는 일을 권장하면 건강한 정신, 좋은 사회가 되는 것이지요.

신앙을 잘 모를 때는 신앙을 보는 태도가 곱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 땅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악을 없애야 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따라 다니지요. 이 의문은 여러 가지 새끼를 낳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갖는 것은 틀렸다. 악이 득세하는 것은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악이 있으니까 하나님의 선이 더욱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선과 악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등등의 여러 가지 말들이 나옵니다. 여기서 바울이 한 말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롬5:20)는 말이죠. 이 말은 “더 큰 죄인에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베푼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시는 풍성한 은혜를 가지고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큰 죄인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을 때 더 큰 감격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이 말은 어떠세요? “건강한 자에게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9:12)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그냥 보면 “죄가 없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필요 없다.”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죄 없는 인간이 있을까요? 단지 죄인임을 깨닫는 자와 깨닫지 못하는 자 두 부류만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의사를 찾아가겠습니까? 병든 것을 깨닫는 자가 찾아가는 것이지요. 어떤 면에서 그 사람이야말로 지극히 정상적으로 신체의 기능들이 활동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느끼지 못하면 건강하다고 판단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병원에 갈 일도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 자신의 정신적인 기능이 작동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어때요?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장본인입니다. 도덕적으로 보면 그 사람은 자기의 스승을 대적자의 손에 판 최고의 악인이지요. 그러나 구원의 측면에서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를 대속했다면 그 자리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최고의 은혜가 이 땅에 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룟 유다는 하나님의 최고의 은혜가 임하게 한 공신이 아닐까요? 내가 이렇게 비꼬아서 말하는 것은 그렇게 설명한 책을 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악함이 선을 구축했다고 악함을 선으로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유다는 여전히 최악을 행한 사람입니다만 하나님은 그런 최악에 막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최악을 최선으로 바꾸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다는 여전히 악한 자입니다.

우리는 종종 악에 대해 합리화하는 것 중에 하나가 하나님은 그 어떤 악이든 선으로 이끄시는 분이라는 전제를 두고 내가 악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의 자비하심으로 나를 선으로 이끄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선을 이용하려는 궤변적 사고입니다. 하나님은 뜻을 두시고 우리의 얄팍한 생각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베푸실 수 있겠지만 정상적인 신앙사고로 보면 온당치 못한 태도이며 하나님을 조롱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악과 불의를 오늘 당장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런 상황에 놓여 있으므로 항상 주님의 뜻을 따르려고 노력하라는 말씀이 되고, 불의를 물리치고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며 하나님의 손길과 함께 나아가고, 그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죠. 죄악이나 악한 것들이 이 땅에 없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그것들에게서 맞서 굳건하게 서있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도 영적으로 승리하는 건강한 하루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