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11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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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 년 전 학생집회를 인도하러 파리에 갔을 때, 함께 간 목사님이 몽마르트 언덕에 가서 초상화를 그리자고 제안해 그곳으로 올라갔었습니다. 집회를 마친 뒤였기에 ‘화가들이 있을까?’ ‘이 밤에 화가가 내 얼굴을 마음에 들게 그려 줄 수 있을까?’ 기대 반 우려 반으로 걸어 올라갔는데 캄캄한 정적만 흐를 뿐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시 돌아내려오면서 언덕에 앉아 파리야경을 구경한 것이 기억납니다. 그 뒤로는 초상화에 대한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고, 어느 화가가 마음에 들게 잘 그려줄 수 있을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아 뇌리에서 지워버렸습니다.

며칠 전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정택영 집사님이(한국에서 미술로 유명한 모 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파리로 건너가 그곳에서 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귀국하면 우리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내 초상화를 그렸는데 선물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듣자 이전 몽마르트로 갔던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간절히 바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유명한 화가가 신앙으로 그렸다고 하니, 감사히 받겠다고 하고는 만났습니다. 그런데 막상 받고 보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드는 그림이었습니다. 그 순간 예기치 못한 좋은 선물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그때 왜 돌려보내셨는지를 말씀하시는 것 같았고, 때가 되어 더 좋은 것으로 주시는 듯한 기쁨이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당신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까? 자신이 정말 예상하지 못한 고귀한 선물을 받고 특별한 기쁨을 가진 적이 있는지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럿 있을 것입니다.

그 런 선물은 물질적 가치가 얼마인가와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때는 조금의 음식일 수도 있고, 조그만 도움의 손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인생을 바꾸어 놓기도 하고, 작은 것에서 새 힘을 얻기도 합니다. 신학교 시절 여러 가지 힘든 때, 한 친구가 내게 점심을 대접했습니다. 사실 내가 늘 대접하는 쪽이었기 때문에 그 친구는 나에게 대접한다는 생각조차 못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지요. “야, 너도 점심을 한번 사봐라.” 그러니까 신기한 듯이 웃으면서 “뭘 먹고 싶어요?”하고 말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 친구가 버스 옆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님이 이렇게 흐뭇해하는 것 처음 봤어요.” 옆에서 내 표정을 본 사람이 그렇게 말했으니 사실이겠지요. 밥 한 그릇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흐뭇하게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마 나를 위로해 주는 친구의 손길을 느껴서 그랬을는지도 모릅니다. 걸어갈 때 발에 걸리는 나무토막도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던져주면 그렇게 고귀한 선물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힘들어할 때 진정한 위로의 한 마디는 생명수와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세상에 최고의 선물이 무엇일까?”

“인간에게 있어 가장 좋은 선물이 무엇일까?”

나는 이 질문을 가지고 생각을 종종 하곤 했습니다.

40 여 년 전, 나의 어머니가 한 아주머니를 전도하고 그 사실을 흥분해서 설명한 것이 기억납니다. “우리 동네 장터에 콩나물을 파는 아주머니가 있지? 너도 봤을 수 있다. 입구에 앉아서 장사하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 부인이 표정이 늘 안 좋아. 그래서 내가 전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전도를 했지. 그랬더니 처음에는 관심이 없어 하더니만 몇 차례 하니까 조금 관심을 가지더라.” “어떻게요?” “‘사실 나는 글을 모르니까 교회에 갈 수 없어요’그러는 거였어. 그래서 그런 것은 전혀 상관없어요. 글을 모르면 듣기만 하면 되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그랬더니 ‘정말요?’하더니 내가 교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하니까 약속한 시간에 옷을 차려입고 나왔더라.” 그다음에 이어지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 부인이 교회를 나오기 시작하면서 표정도 바뀌고,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장 보러 가니까 글도 모른다는 사람이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목사님 설교를 듣고 성경을 맞추어 보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 부인은 예수 믿고, 글을 깨우치고, 삶이 바뀌었고, 하나님의 손길 안에 살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분이 집사님이 된 것을 보았으니까 굉장한 발전이지요?

아무리 찾아봐도 세상에 예수님과 비견될만한 고귀한 선물은 없다고 봅니다.

여 러분도 아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만 ‘시애틀의 풀러’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전신마비 장애인입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할 수 없지요. 하루는 남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생각하던 중, 자기와 같은 입장에 처한 전신마비 장애인들에게 위로의 메일을 보내기로 하고 보냈습니다. 하루에 1,400통씩을 보낸다고 합니다. 동병상련이어서 그런지 수많은 사람이 큰 위로를 받는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절망에 빠져 있어야 할 사람이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 위로를 보내는 것은 정말 고귀한 선물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나는 이럴 때 버나드 쇼라는 극작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자기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즐겁게 만들지 않는다고 원망한다.”

우리는 정말 고귀한 선물을 할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겉을 보고 그 선물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 의미와 내용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물을 주고 선물을 받는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나 스스로가 평가절하해버린다면 아무리 좋은 선물도 그냥 뒹구는 쓰레기에 불과할 것이고,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실제의 의미를 안다면 생을 바꾸는 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말 예수님이 그렇습니다.

교회당이나 교회 다니는 사람을 보고만 신앙이라는 것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겸허하게 받는다면, 이런 선물이 다시는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가장 기쁜 선물이라고 나는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