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08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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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 적이 있습니까? 사람은 일반적으로 내 눈 앞일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궁극적이고도 거시적인 관점에서 자신을 보고 평가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것을 그렇게 보는 것이 귀찮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해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나이는 얼마이며, 얼마나 더 살 것이라고 봅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영위(營爲)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까?” “당신의 삶의 목적은 무엇이며, 그 목적에 얼마나 감화되고 집중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이 세상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다고 봅니까?” “당신은 이 세상에서 당신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나가고 있습니까?” 등등 우리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런 질문을 아무리 해도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런 생각을 해서 당장 답을 얻지 못하더라도 그것에 의거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후자입니다.

나도 젊은 시절 앞날을 알지 못했고, 모르는 앞날을 놓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답해했고, 오히려 그런 생각하는 것보다는 오늘 현실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더 낫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들과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고, 그들의 가치관이 바로 나의 가치관이 되어버리는 시기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내 인생은 무엇이며, 나는 이 세상에서 무슨 일로 태어났는가?’ 누구나 자기가 원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겠지만 태어난 이상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삶의 목적을 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마치 낙엽이 뒹굴 듯이 굴러다니다 끝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세상은 어떠하며,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서와 나 자신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누구나 이것을 다 알아야 사는 것은 아닙니다만 나로서는 이것을 알지 못하면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인생을 살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당시에 ‘백’(백그라운드)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습니다. 요즈음은 ‘금수저’라는 말을 쓰지만. 나 자신을 보았을 때 흙수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살아갈 날을 생각해보면 흙수저였습니다. 부모로부터 가게를 이어받는 것도 없고, 내가 무엇을 하려면 뒤를 받쳐 줄 수 있는 처지도 되지 못했고, 그 어떤 도움을 받을 기대를 할 수 없었으니까요.

요즈음 방송이나 신문 매체들을 보면 ‘청년실업’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옵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남의 말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내가 목사이기도 하겠지만, 나의 젊은 시절이 머리에 떠오르니까요. 내가 돌아 보건대 우리나라가 경기가 좋은 때가 거의 없었던 것 같고, 청년취업률이 높았던 때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무엇을 해서 먹고 살지?” 여기에 시달려 온 것이 우리 자신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물론 이것은 내 개인의 생각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위상은 상당히 높아졌지만, 나의 젊은 시절은 세상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은 나라일 뿐이었습니다. 이제 달라진 점은 ‘어렵다’는 것은 그대로이지만 형태가 달라졌지요. 마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뀐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그 두 시대를 다 사는 사람이지만 사실 아날로그에 속한다고 봐야겠죠? 그러나 어렵다는 말은 쉽다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이고, 불가능이라는 말은 그것보다 더 어렵다고 해석하는 편이 옳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공분을 살 수 있지만, 요즈음은 주말이나 휴가 때가 되면 모두 차를 몰고 나가 전국의 각도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합니다. 나의 시대 눈으로 이것을 보면 “잘 사네.”하는 말이 쉽게 나옵니다. 모든 물가가 올랐지만, 이전 같으면 서민들이 구입하지 못할 것이나 드나들 수 없는 곳에 지금은 누구나 이용합니다. 이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삶의 질이 올랐고, 평등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실업자들이 늘어나고,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것은 3,40년 전에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지요. 젊은 부부들은 맞벌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삶의 질이 올라가는 것과 인건비는 비례합니다. 그렇다고 나만 낮춰 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회사가 경영난을 겪으면서 감원하려고 하면 노조에서 일어나 부당한 해고라고 합니다. (실제 부당한 해고도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모든 책임을 사주가 떠맡아야 합니다. 이것 또한 틀린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세상은 서로 얽히고설켜 돌아갑니다. 아마 정부도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복잡한 일들로 골치 앓지 않는 나라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경쟁이 덜한 나라나, 약간의 사회주의적인 경향을 가진 나라들(이런 나라들은 뚜렷한 빈부의 격차가 덜하고 그 대신 재미도 덜합니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 나라들도 지금의 현상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2차 대전부터 세계의 리더가 됨으로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마음씨 좋은 아저씨’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겪은 유럽의 중심 국가들은 전쟁복구가 시급했던 터라 리더십을 미국에 부탁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면서 오늘까지 왔는데 지금 미국 대통령 후보 중 한 사람이 철저하게 미국의 이익을 중요시하고 심지어는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인데 미군주둔비용을 대지도 않고 미국을 이용한다는 식으로 발언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날이 오리라 봤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하나의 나라이지 개 국민의 마음이 다 너그럽다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세계는 자기 나라의 이익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고, 마음씨 좋은 아저씨도, 성질 나쁜 아저씨도 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후자는 소문이 좋게 나지 않으면 그 나라의 경제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모든 것이 컴퓨터 산업화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지요. 누구나 다 아는 말이지만 빨리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경제 대국 2, 3위에 끼어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일본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고, 지금은 중국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최대고객이 중국이니까요. 이러다가 우리나라가 중국의 경제적 속국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나는 정치가도 아니고, 경제에 대한 지식도 높지 못합니다. 내가 이런 점들을 말하는 것은 성도들을 이끄는 목사로서 본 현재의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기는 이런 상황 속에서 나라나 개인이나 자신들이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정립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수라고 봅니다.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일이든 시켜만 주면 하겠다는 각오가 되어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적잖습니다. 대단한 각오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다르게 보면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겠다는 것이 전혀 세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은 허둥지둥 여러 가지의 것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면 집중이 안 되고, 그 어느 하나 제대로 잡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를 집중해서 지식을 쌓고 거기에 맞는 취업의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지요. 요새 이런 일이 대세니까! 하는 것에 맞춰 직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무시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놓을 정도의 수준을 갖는 것입니다. 목적을 정하고 그것을 숙련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다음은 좋은 자리나 위치를 구한다기보다 적절하고 장기적인 자리를 구해서 그곳에서 지속적인 발전을 꾀하는 것입니다. 결국, 나를 고용한 곳은 나의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쪽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것은 자신의 노력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입니다. 능력은 있으나 타인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팀워크를 해치기 때문에 결국 직장에 피해를 주는 셈이 됩니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의 지향점을 내가 맞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선생이 한수를 가르쳐 준 셈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이루는 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강력한 힘이 된다고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성을 지키고 집은 세운다 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헛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사망의 골짜기를 헤쳐 나오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시기도 하시지만, 자기의 말씀으로 가르쳐 하나님을 의지하게도 하시고, 하나님의 길을 찾아가게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주관하기도 하시고, 우리를 세상에서 살아가게도 하십니다. 당신이 가야 할 길을 보게도 하시고, 인도도 하신다는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세상의 당신의 눈앞에 펼쳐지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