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5

나는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column0716

한 달 전만 해도 우리는 미국과 북한이 싱가포르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하는 것을 보고 금방이라도 핵문제가 해결되고 남북이 하나가 될 것처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지금 잠잠하고, 미세하게 꿈틀거릴 뿐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대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성급한 기대는 망상을 불러옵니다. 가장 바라는 바는 한 번에 모든 것이 다 해결되어버리는 원샷(one shot)이지만 그럴수록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착실하게 전진해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집니다. 우리의 마음은 이번 시험에만 합격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다음의 일들이 엄연히 있고, 이번 사업 한 번 성공하면 쭉 행복해질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과 행복은 절대적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서야 비로소 한 번으로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때로는 이런 것들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요.

어떤 경우는 지금 자신의 처지를 보면 소망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 자신의 판단일 뿐 사실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일반적 자연법칙에 맞추어 해석하거나, 자신의 상식이나 경험에 비추어 판단해버립니다. 그것을 마치 신념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을 보니 이제 틀렸어.” 마치 신통한 예언자라도 된 양, 또 그렇게 말한 대로 살지 않으면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인 양 단정한 대로 움직입니다.

‘이것은 이렇다.’라는 말을 ‘이것은 이래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말로 바꾸면 어떨까요? 다시 말하면 단정을 의지로 바꾼다는 말이지요. 단정은 그냥 단정이 아닙니다. 잘 들여다보면 신념입니다. 인간은 때로는 스스로의 운명을 단정 짓는 부정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지요. 그리고 의지의 힘이 빠지면 그 신념이 운명인 것처럼 그렇게 따라 삽니다.

지구의 역사가 생긴 이래 오늘 날만큼 최고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살았던 때가 있었을까요? 물론 하루하루가 그것을 갱신하며 살게 됩니다만 2차 세계대전과 대립의 시기가 지나가자 새로운 전쟁 즉 경제의 발전이 일어났고, 21세기에 들어오자 이 모든 것이 극적인 변화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을 변화무쌍이라고 해야겠지요? 사람들은 안락함, 경제의 혜택을 누리는데 모든 삶의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편리하고, 안락하게 살 것인가?’ 이것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모토처럼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해외여행과 휴식을 갈망합니다. 얼마 전 지방에 갔다가 어느 지인을 만났는데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아기들을 안고 놀이하는데 줄 서 있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가 봐요.” “….” “돈을 쓰는 것에 겁이 없어요. 일단 쓰고 보자 하는 생각에 그냥 카드로 긁어버려요. 집도 살 생각 없고, 노년에 대한 준비도 없어요. 차 사고 놀러 다니는데 바빠요. 이해가 안돼요.” “젊으니까 에너지는 넘치고 놀고 싶겠지요. 또 시대가 다 그렇게 부추기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 하고 싶지 않겠어요?”

그러나 이런 말을 하면서 씁쓸한 마음이 한 구석에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인생은 길고, 우리 자신은 의미를 찾아 나가려고 하지 않고, 노력은 쉬기 위해 하는 것이고, 애써서 해놓고 안 되면 손해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내일 일을 모르니까 오늘을 즐기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의 방식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환상은 크고 마음은 급하고, 욕망은 강하지만 노력은 하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이 우리 속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내일 어렵지 않기 위해 오늘을 아끼겠습니다. 그것을 못 쓰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남기고 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오늘 나의 노력이 내일 열매를 기대대로 얻지 못한다 해도 노력하겠습니다. 기대의 결과는 얻지 못할지언정 노력한 습관이나 노력한 내용은 나에게 남아 있어 유익할 것이니까요.

오늘 나타난 현상으로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오늘을 기반 삼아 어느 쪽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를 판단하고 시행하겠습니다.

오늘 내가 방황하고 있다고 한다면 가장 큰 불행으로 알겠습니다. 삶에 목적과 목표가 없으면 방황할 수밖에 없고, 그 목적 없이 사는 삶에는 노력할 이유를 찾을 수 없고, 늘 피해의식에 떨며 불안해 할 것입니다.

성실함이 나의 이름이 되도록 살겠습니다. 신앙도 성실함으로, 삶도 성실함으로, 목적을 이루어감에도 성실하게 행하겠습니다. 내 욕망은 성실입니다.

속단하지 않고, 성급하지 않으며, 사행심을 버리고, 오늘 5분이라도 10년을 건진다면 18,250분 즉 304시간을 살려서 일을 이루어 가겠습니다. 우리의 많은 실패는 어디서 오는가 하면 성급함에서 온다는 점입니다. “이래야 한다.”는 마음을 갖는다면 당신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인가 할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신앙과 거리가 먼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기와 동행하며 사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도우시며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사람이 자기가 마음먹고 노력한 대로 다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좀 더 엄숙하고 진지해야 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